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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버닝 그레이트 헝거 리틀 헝거 뜻 해석 줄거리

by 비화시 2022. 4.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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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를 꿈꾸지만 배달 아르바이트로 당장의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종수(유아인 분)'는 우연히 어릴 적 동창 '해미(전종서 분)'를 만나 사랑에 빠집니다. 갑자기 아프리카로 떠났던 해미가 돌아오는 날 설레는 마음으로 공항으로 마중 나가는 종수, 하지만 해미 옆에는 '벤'이라는 정체불명의 남자가 있습니다. 벤은 특별히 하는 일도 없이 돈이 많아 보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해미가 갑자기 사라지게 되고, 종수는 벤을 의심합니다.

버닝 포스터 이미지
버닝 포스터

 

영화는 각각의 인물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합니다. 특히 등장인물 중 누구를 '리틀 헝거'로 누구를 '그레이트 헝거'로 보느냐에 따라 매번 새롭게 영화를 볼 수 있습니다. 다음은 단상 중 하나입니다. 어느 날은 완전 다르게 해석됨 주의.

 

 

리틀 헝거와 그레이트 헝거

영화 속에 여러 번 등장하는 이 두 단어는 해미가 아프리카 여행 중 만난 부시맨들이 사용하는 사회적 개념입니다. 리틀 헝거는 육체적인 굶주림에 직면해 그것에 대한 결핍과 욕구를 갖고 있는 사람을 뜻하고, 그레이트 헝거는 삶의 의미를 추구하며 이에 대한 결핍과 욕구를 갖고 있는 사람을 뜻합니다.

 

해미는 언뜻 그레이트 헝거로 보이며, 자신이 그렇게 보이기를 바라는 인물입니다. 카드빚을 가족에게 떠넘긴 채 거짓말을 일삼는 처지지만 가진 돈을 모두 아프리카 여행에 써버리죠. 부시맨들의 춤을 보고 싶다는이유에서 입니다.

반면 종수는 리틀 헝거로 보입니다. 소설 한 줄 쓰지 못하고 생계를 위해 고단한 삶을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아르바이트 면접에서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았을 때 이를 견디지 못하고 뛰쳐나오기는 했지만, 이것으로 그레이트 헝거라고 말하기는 부족해 보입니다. 그레이트 헝거와 리틀 헝거를 구분짓는 것은 결국 삶을 커다랗게 두고 어떤 선택을 하냐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뛰쳐나온 종수는 여전히 생계에 매몰되어 있었으며, 생계를 위해 나레이터 모델을 하며 춤을 추던 해미는 그것을 중단하고 그레이트 헝거들의 춤을 췄으니까요. 그것이 비루하고 구질구질한 시늉일 뿐이더라도 사라질지언정 리틀 헝거의 삶을 택하진 않았죠.

 

확실한 건 이 둘은 모두 '헝거'라는 것입니다. 벤은 헝거가 아닙니다. 물질적으로 풍족하고 삶에 대한 고차원적인 질문도 없습니다. 심심하지 않으려고 그저 신기하고 재밌는 걸 찾고 있는 사람일 뿐입니다. 그런 벤에게 위의 두 헝거는 '구경거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더 재밌기 위해서는 또는 그냥 그래야지 싶다면 언제든지 태워버려도 되는 존재들이죠. 그리고 마음만 먹으면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그것에 대한 결핍과 욕구 또한 철저히 없습니다. 이는 아래 종수와 벤의 대화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난 비닐 하우스를 태우는 취미가 있어요. 쓸모 없고 지저분해서 눈에 거슬리는 비닐하우스들, 걔네들은 다 내가 태워주길 기다리는 것 같아요."

"쓸모 없고 불필요한지는 형이 판단하는 건가요?"

"난 판단 같은 건 하지 않아요. 그냥 받아들이는 거지... 그건 비 같은 거예요. 비가 온다. 강이 넘치고 홍수가 나서 사람들이 떠내려 가는 거예요. 비가 판단을 해? 거기에는 옳고 그른 건 없어요. 자연의 도덕만 있지... 오랜만에 태우는 재미가 있을 것 같아요."

 

이 대화가 있은 날 이후 해미가 사라집니다. 벤의 집에서는 해미의 시계와 전리품처럼 전시되어 있는 다른 여자들의 액세서리들이 발견됩니다. 종수는 벤을 의심합니다. 종수는 하루에 단 한 번 햇빛이 들어오는, 사라진 해미의 방에서 마침내 소설을 쓰기 시작합니다.

 

버닝 한 장면 캡처
버닝 한 장면

 

 

영화 개요

  • 버닝 (2018)
  • 감독 : 이창동
  • 각본 : 오정미, 이창동
  • 원작 : 무라카미 하루키 <헛간을 태우다>
  • 출연 : 유아인, 전종서, 스티브 연 등
  • 상영시간 : 1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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